이주 노동자 이야기
대한민국 산업화되면서 큰 경제적 성장, 한강의 기적 후에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 오게 됐습니다. 2011년에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 통과한 후 돈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 배우고 발전된 한국의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되었습니다. 네팔에서 2012년에 한국에 처음으로 20살의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서 입국했습니다. 노동자로서 적응되며 주 6일, 하루에 12~14시간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가족들의 삶을 돕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빠른 언어와 사투리, 음식, 춥고 무더운 날씨 등에 적응하는 과정에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5년 정도의 단기 산업 노동자의 취업 체류기간 끝난 후 2016년에 집에 돌아갔지만 3개월 뒤에 한국에 같은 회사에 일을 하러 다시 왔습니다. 출신 국가에 3개월 있는 동안 결혼도 했습니다. 네팔에 결혼 문화를 보면 부모님이 결혼 시켜주는 경우가 아직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문화를 따라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올 때는 미혼이 아닌 기혼 남자로서 아내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습니다. 네팔에서는 수많은 부부가 떨어져 살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들 가족끼리 함께 좋은 시간 너무 잘 보내는 것을 보며 저도 ‘한국에서 가족과 같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9 단기 취업비자에서 가족을 초청할 수 없습니다. E-9에서 가족 초청이 가능한 비자 E-7과 F-2-6로 체류자격 변경해야만 가족 초청이 가능한데 그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5년 이상 거주 시간, 급여, 재산, 한국어 능력 등 필요한 것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점수가 모아져서 E-7 비자로 변경했습니다. 결혼한 후 부부가 같이 살지만 저는 1달도 같이 못 살고 한국으로 왔었습니다. 회사에서 휴가를 잘 안 주어지기 때문에 아내가 한국으로 초청한 후에 지금 같이 살고 있습니다.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 것과 너무 다른 시간이 보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성격 다른 사람이 서로 알아보며 우리는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인들로부터 경제가 열악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공감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기억하는 제사를 하는 것은 영원히 남아 있어야 하는, 네팔과 비슷한 동부 문명의 예라고 생각합니다. 교육, 기술, 산업에 발달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서로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살아왔던 상부상조 문화 등이 배울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해야 하는 의무, 나라에 대한 애국성과 충성을 하기 위해서 국방의 의무,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도 좋은 제도이며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 나라에서 여러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한국에서 즐겁게 살고 안전하게 돈을 벌며 한국 사회에서 배울 만한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고 귀국하기를 바랍니다.